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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치사

노무현 "이의있습니다" 삼당합당 알아보기

by Cheeeeeeese 2025. 6. 10.
✦ 목차 ✦
 

정치적 은인, 김영삼과의 만남

1988년 13대 총선에서 노무현은 부산 동구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 김영삼이 이끄는 야당 세력의 일원으로 정치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정치 경력이 전무했던 부산 출신의 노동·인권 변호사를 김영삼은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그는 노무현을 YS계의 개혁 인재로 키우려 했고, 노무현 역시 훗날 김영삼을 "정치적 은인이자 큰 어른"이라고 회고할 만큼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정치적 사제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3당 합당, 김영삼의 선택

1990년 1월 22일, 한국 정치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이 합당을 선언하며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한 것이다. 전체 의석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218석을 차지하는 압도적 정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게 그 유명한 3당합당이다.

 

김영삼이 3당 합당을 선택한 배경에는 현실적인 계산이 있었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면서, 4당 구도로는 각자 본인들의 집권이 요원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분열된 야당으로는 집권의 소망이 보이지 않았고, 3당 통합을 계기로 기득권세력이 누리는 기본적인 고정 지지표와 충분한 정치자금을 확보하게 된다면 차기집권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태우 역시 여소야대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야당과의 연합을 모색했다. 여소야대 해소와 보수 통합을 통한 장기 집권 기반 마련이라는 목적 아래 이루어진 이 합당은, 안정을 위한 정치적 타협이라는 찬성 논리와 군사정권과의 타협, 명분 없는 연합이라는 반대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순간이었다.

 


노무현의 반대와 원칙

그러나 노무현은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은 명확했다. "군사정권과 손을 잡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역주의와 기득권 연합을 강하게 비판하며, 당내에서 당당히 이의를 제기했다.

 

1990년 1월 30일 오전 9시, 서울 마포 민주당사에서 열린 3당합당 결의 임시 전당대회. 경찰병력과 청년 대의원들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노무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른팔을 들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목청껏 외쳤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 해야 합니다!" 초선 의원의 용기 있는 외침이었다. 그 결과는 탈당과 정계 이탈, 그리고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선택은 극소수의 의견이었고, 정치적 불이익은 막대했다.

 

노무현은 김영삼이라는 정치적 은인 덕분에 국회에 입성했지만, 3당 합당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권력자 앞에서도 옳다고 믿는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정치인의 철학이어야 한다는 신념은 이때부터 분명했다. 그는 이후 김영삼과 정치적으로 완전히 선을 긋고 독자 행보를 시작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지만, 영혼을 팔 수는 없다"는 자세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노무현 정신'의 완성과 메시지

3당 합당 이후 노무현의 행보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91년과 1995년 부산 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했고,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지만,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으로 경남지역 입성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국민 참여 경선'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마침내 2003년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비주류 정치인의 첫 성공 사례가 되었다.

 

노무현이 말했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만드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천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원칙을 굽히지 않는 것,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국민 앞에 서서 옳은 말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무현 정신'의 출발이었다. '노무현 정신'은 원칙, 비타협, 국민 직접 참여, 지역주의 타파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이후 민주당-국민참여당 계열 진보정당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김영삼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많은 민주 세력이 정치권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던 3당 합당.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도 이 정신이 아닐까. 정치가 말과 권모술수의 게임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올곧게 서는 것임을 노무현의 삶이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그의 선택은 당시에는 소수의 목소리였지만, 결국 한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은인에게도 할 말은 하는 정치인, 권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원칙, 그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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